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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물건을 판자도
물건을 산자도
남은 것은 목숨뿐인
평양의 시장
담배꽁초 주어모아
그 솜으로 채웠다는 이불이며
- 세수하고 가세요!
소리치며 붙들며
세숫물 파는 여인들
맹물 밖에 없는 궁핍
그 궁핍마저 팔려고
시장 밖까지 진열된
백성의 찌질한 가난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그 모든 이유들이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시커멓게 붙여진
살인의 포고문들이
식량을 낭비하는 자 총살!
유언비어 퍼뜨리는 자 총살!
국가재산 훔치는 자 총살!
외국문화 유포하는 자 총살!
철도질서 어기는 자 총살!
포고문의 용서란
동냥하고
통곡하고
아파하고
신음하는
그 뿐이어서
마지막 숨들이 모인 시장이다
최후의 날들이 모인 시장이다
그래서 더 침침하고 비통하다 못해
공포까지 느껴지는 평양의 시장
진동하는 악취
기워 입은 옷들
동냥하는 때 낀 손들
고함소리 싸우는 소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 모든 것
- 저 애를 붙잡아줘요!
누군가의 부르짖음에
- 저 놈 잡아라
도둑 잡아라
여기저기 번지는
다급한 외침들
도둑 맞힌 전부가
가진 것의 전부인
텅 빈 삶들이어서
놓치지 않으리라
대신 잡아 주리라
온 시장이 들썩이는데
앞에서 막아서면
왼쪽으로 피하고
그 쪽에서 기다리면
또 뒤로 돌아서며
도망치는 아이나
잡으려는 어른이나
갈팡질팡 하는 속에
마침내 군인의 억센 손이
녀석의 멱살을 틀어쥔다
하늘 향해 쳐드는
커다란 주먹도 보인다
저 주먹이 내려치는 곳에
뼈아픈 비명도 있으리
우르르 모여드는 사람들
하지만
보따리를 그러안은 채
초면이자 악연을 향해
당돌하게 소리치는 아이
- 훔친 게 아니예요!
그 말은
네가 해선 아니 될 말
물건 임자가 해야 될 말
뒤늦게 달려온 여인에게
서둘러 길 내주는 사람들
- 그거 이리 내놔
여인의 첫 마디에
틀림없는 짓!
사람들이 격분하고
군인이 다시 주먹을 드는데
- 때리지 말아요!
그 애는 내 아들이에요
그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여인에게 집중된다
분명 잡아달라 쫓아왔던
그 목소리의 임자
사람들이 더 놀랐던 것은
보따리를 헤치려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미친 듯 달려들 때
보따리를 부여잡은 모자(母子)가
서로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할 때
- 제발 이리 줘다오
보지 말고 이리 줘다오
-한번만 보게 해줘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도대체
저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보겠다는 아들이고
봐서는 안 된다는 엄마인가
시장의 사람들
밀치며 당기며
어깨들 너머로
보고 본 대로 말해주고
듣고 들은 대로 다 알게 된 물건은?
돈도 아니었다
시장에서 팔고 사는
흔한 것도 아니었다
색 낡은 베개였으니
다시 봐도 베개였으니
그 베게가 무엇이어서
아이는 훔쳐야만 했고
엄만 지금 저토록
돌려 달라 애원해야 하는가
그 베개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아이가 필사의 발악으로 이빨로 물어뜯자
엄마는 기절할 듯 쓰러지며
제 가슴을 쥐어 때리는 것인가
그래봤자
고작 베개인 것을
땅바닥에 쏟아지며
흩어지는 것이란
모래뿐이었던것을
길에서도 그냥 주울수 있는 것을
하지만
오 하지만
아이는 맥없이 주저앉고
엄마는 얼굴을 감싸쥐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모자(母子)의 통곡이여
땅바닥의 모래들을 쏘아보며
아이의 울음소린 더 커지고
엄마의 어깨도 세차게 흔들리고
그렇게 알 수 없는 사연 속에서
모래를 휘 뿌리며 일어서는
아이의 처절한 부르짖음
-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이때까지 쌀 베개라 하구선
아니잖아
모래였잖아
쌀이라고 해서
굶지 않았는데!
쌀 베개라고 해서
학교에도 참고 갔었는데!
모여 섰던 가슴들을
때리는 그 절규
쌀 베개 하나에
목숨을 베고 살아 온
아이의 슬픈 그 고발
아이의 목소리가
이리도 슬프게 들리다니
무서운 저주처럼 들리다니
이것이 정녕
아직 세상을 못 다 산
저 꼬마의 목청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쌀 베개라 속여야만 했던
그 최후의 모성
그동안 기대왔던 믿음 앞에서
어린 삶이 무너져야만 하는
그 마지막 배고픔
매일매일 긴 밤을
아이는 그 베개를 그러안고 잤으리라
동트는 새벽까지
엄마는 그 뒷모습을 마주보며 울었으리라
아 이제는 어찌살꼬!
쌀 베게에 누워 살던 그 인생들에
일어 날 아침이 모래로 하얗게 덮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