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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묘

토끼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힐끔 풀숲 쪽을 돌아보니 흰 털뭉치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털이 흰 개라고 생각한 그것은 빨간 눈을 빤히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아니었다면 토끼인 줄 몰랐을 거였다. 그는 토끼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빨간 눈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신 말고도, 원래 눈이 붉은 품종의 토끼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저리 눈이 붉어지도록 피곤하고 지친 존재가 세상에 또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고 그런 존재가 흰 털이 쓰레기처럼 더러워지도록 어두운 공원에 버려져 있다는 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공원에서 자생했을 리 없는 토끼는 버려진 것이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토끼 사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아이의 부모들이 토끼 유기를 비밀리에 자행하는 시기였다. 토끼 사육 열풍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든 일이 그렇듯 정확히 따지기 쉽지 않지만 평소 건강하고 활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초로의 의학박사 말이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는 성장해도 몸집이 그다지 커지지 않는 품종의 토끼를 키우고 있는데, 자신의 채식 습관은 아무래도 토끼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뜬 엉뚱한 성격의 토끼는 영민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자살하는 토끼에 관한 그림책은 시종일관 재치가 있었다. 그림책 속의 토끼는 힘들고 지쳤다기보다 지루하고 따분해서 놀이의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나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은 잘 죽는 병아리나 무서울 정도로 번식력이 강한 햄스터에게도 질려 있었다. 학교 앞 노점상들은 예전에 기계로 부화한 병아리를 팔았듯이 실제로는 젖도 안 뗀 아기토끼들을 미니토끼라 부르며 종이상자에 담아 팔았다. 부모의 우려와 달리 애완동물로서의 토끼는 사료만 주면 알아서 크는 게 특징이라서 키우기 까다롭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저명한 교수에 의하면 토끼에게조차 배울 것이 있다지 않은가. 부모들은 우려를 씻고 토끼 키우는 것을 허락했다. 한두 집이 키우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맘 놓고 토끼를 사달라고 졸랐고 부모들은 달리 거절할 핑계를 찾지 못했다. 토끼 사료용 알파파 건초를 판매하는 한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토끼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가구 수가 예년에 비해 여덟 배 가까이 증가했다.

막상 키워보니, 다른 동물의 사육도 그렇겠지만 쉽지도 재미있지도 간편하지도 않았다. 토끼에게서 채식주의자로서의 모범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토끼는 여느 애완동물과 마찬가지로 딱딱한 정량의 사료나 건초만 먹었다. 고체형의 음식만 먹는다는 점에서 간편했지만 당근을 갉아먹는 등의 모습을 보는 잔재미는 없었다. 도대체 사료나 건초만 먹는 토끼에게 뭘 보고 채식 습관을 배웠다는 건지 어리둥절했다. 좀 자라면 채소나 과일을 먹여도 좋다고 했지만 물기가 묻어 있는 채로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니 함부로 주기가 겁이 났다. 토끼는 그저 식성이 까다롭고 비싼 사료를 축내고 양육에 잔비용이 많이 드는 군식구에 불과했다. 개나 고양이처럼 친근하게 애정표현을 하는 경우가 없어 애완동물이나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기 망설여졌다. 사료와 양육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소나 돼지 취급을 하는 게 적당했지만 아무래도 고기를 삶아 먹기 꺼려진다는 점에서 소나 돼지보다 못했다. 까다롭게 골라 먹여야 하고 잘못 먹이면 금세 탈이 나고 탈이 나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분비물을 싸고 재채기를 유발하는 털을 날리고 빤히 응시해서 무섭게 하고 새끼를 낳게 할 생각은 없지만 새끼를 낳았을 때 누군가 들여다보면 물어뜯어 죽인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어쩌자고 이 토끼들은 그림책의 토끼마냥 자살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아이들은 무엇이든 금세 싫증을 냈고 부모들도 수명이 육 년에서 팔 년 정도라는 토끼를 식구의 일부로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최장수 토끼의 수명은 십팔 년이었다. 짧게는 육 년, 길게는 십팔 년의 기간이면 토끼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고등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가거나 결혼해 살림을 낼 나이가 될 거였다. 경기는 늘 불안해서 언제 어느 때 식구들조차 내다 버리고 싶어지는 불경기가 닥칠지 몰랐다. 유일한 노동이라는 듯 사료나 건초를 긴 이빨로 씹어대는 토끼를 육 년이나 혹은 그 이상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토끼를 키우는 일이 아예 무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무표정하게 누군가를 오랫동안 응시하다가는 결국 미움을 사고 만다는 걸 토끼가 알려줬다. 부모 중 하나가, 주로 아버지가 그 역을 맡았는데, 산책을 가듯이 어두운 밤에 토끼를 안고 나갔다가 공원 풀숲에 풀어놓고는 토끼가 어디론가 가버리면 혹은 가버리기도 전에 냉큼 집으로 돌아왔다. 한 번쯤 뒤를 돌아봄으로써 토끼를 내다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라 생각하며 양심의 가책을 면하고자 했으나 그 순간에도 걸음을 늦추지는 않았다. 버려졌다고 해서 나쁠 리 없을 거였다. 공원은 도시에서 유일한 야생의 공간이었다. 토끼들은 알아서 풀을 골라 먹을 것이고 푹신한 곳을 찾아 잠을 잘 것이다. 알아서 병이 걸릴 것이고 그러다 서서히 죽어갈 거였다. 비둘기나 까마귀, 쥐나 개미, 각다귀같이 공원 주변에 자생하는 것들처럼혹은 버려진 다른 동물들처럼. 돌아가는 길이 잠시 허전했으나 집으로 돌아와 케이지가 텅 빈 것을 확인하면, 마치 토끼가 돌아와 있을까봐 겁냈던 것처럼 안도하며 방금까지 토끼를 안고 있어 털이 묻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털이 하얀 토끼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이 만져졌고 맥박이 뛰듯이 고요히 움직이는 등이 만져졌다. 토끼는 그런 손길이 익숙한 듯 잠자코 있었다. 그는 토끼에게, 정확히 말하면 등의 얇은 피부 밑에서 느껴지는 모세혈관의 움직임과 호흡의 느린 리듬감에 홀렸다.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케이지를 주문하고 나서야 공원에 버려진 토끼를 품고 오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토끼를 버리게 될 테니까. 그는 고작 육 개월만 도시에 머물 예정이었고 그중 일부 시간이 이미 흘러갔다. 예정된 파견근무가 끝나면 살던 도시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에는 그 역시 도시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한밤중에 몰래 토끼를 내다 버릴 거였다.

 

 

 

*

 

일은 간단했다. 그가 있던 도시에서 온 문서를 정리하고 그 도시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여 간결한 형태의 서식으로 만들어 담당자에게 넘겨주면 되었다. 서식을 작성할 때면 그는 자신이 교무실에 남아 반성문을 쓰는 학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반복하는, 자료를 검색하는 일이나 서식을 작성하는 일은 똑같은 말을 종이 가득 적으면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가 반성문 쓰듯 작성한 서류를 담당자는 늘 웃음 띤 얼굴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받아들었다. 그는 담당자가 기분이나 서류 상태에 상관없이 매번 똑같이 웃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조차 정해진 업무 매뉴얼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담당자는 그가 돌아서기만 하면 책상 오른쪽에 높게 쌓인 서류더미 위에 방금 그에게서 받은 서류를 툭 올려놓았다. 그 때문에 그는 담당자가 자신의 업무내용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두 도시 간의 경제적, 외교적, 문화적 계약관계에 자신이 제출한 자료의 오류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한 나머지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잘못 인용한 통계치 때문에 협약이 깨져서 두 도시 대표가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날들이 태평하게 지나갔다. 여전히 그는 인터넷이나 팩스로 자료를 모았고 서식을 작성하여 담당자에게 제출했다. 언제인가 일부러 통계치의 합계가 엉망인 서식을 작성하여 담당자에게 건네준 적이 있었다. 담당자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더미 위에 툭 서류를 올려두었다.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와 담당자가 잘못을 알아챈다면 바로 건네줄 생각으로 제대로 된 서식을 결재판 사이에 끼워두었다. 담당자는 끝내 그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두 도시 간의 협상이나 계약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는 그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나쁜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서류가 툭 내던져지는 소리를 곧 퇴근을 해도 좋다는 뜻으로 여겼고 자리로 돌아와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번잡스럽게 자료를 뒤적이거나 책상을 정리하며 시간을 때웠다.

만약 누군가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결국에는 파견근무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거창하게 말하면 자네가 두 도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야.’라고 한 상사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오랜 반목관계에 있는 두 도시의 협력과 통합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상사는 전화통화에서 그가 여러 가지 목적에 사용될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만 했다. 도대체 어떤 정보를 모아야 하는 겁니까? 그가 상사에게 물었다. 묻고 나서 생각해보니 상사는 이런 식의 질문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떠한 정보를 모아봤습니다. 정보들은 어떤 면에서는 유용하지만 전혀 무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도 좋습니까? 상사에게는 그렇게 물었어야 했다. 그것이 입사 초기부터 상사가 그에게 가르쳤던 방식이었다. 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는지 묻는 것은, 그 말을 할 때의 상사 표정이 눈에 선했다, 꼭 세 살 먹은 어린아이 같은 짓이야. 밥을 떠먹여달라고 조르는 일이라는 소리지. 그는 곧 후회했다. 어떤 정보라도, 뜻밖에도 상사는 온화한 말투로 대답했다, 괜찮아, 정보를 선택하고 유용성을 결정하는 것은 자네가 아니라 다른 담당자 몫이니까. 자네는 단지 수집만 하면 돼. 말하자면, 상사가 덧붙였다, 일종의 사냥개라고 생각하면 돼. 어떻게 자신을 개라고 생각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시하는 사냥감을 단지 잡아오기만 하면 되거든. 무엇을 잡을지, 잡은 후에 구울지 삶을지 버릴지 박제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숲을 달리는 사냥개가 아니라 지시를 내리고 서서 구경하는 주인이지. 그러니까 개는 잡을 때까지 죽도록 초원을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뭐, 듣기 좋은 비유는 아니군요. 그가 상사에게 대꾸했다. 하하하, 그렇겠군. 미안하네, 사실 자네가 아니라 내가 그런 심정이라서 말이야. 상사가 쑥스러운 듯 사과했다. 그는 이해했다. 그 비유를 따르자면 어차피 상사도 사냥개의 주인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파견근무 기간이 길었다면 주저했을 테지만 단 육 개월이었다. 육 개월이라면 도시를 떠나 긴 여행 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기간이었다. 그는 상사에게 파견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상사가 뭔가 내키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천천히, 그렇게 결정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인사발령이 나 있었다. 인사에 있어서 사전협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조직 내에서 그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통보만으로 충분한 존재였다. 그가 이번 발령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도시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으며 먼저 연락이 오는 일도 드물었으므로 그는 거의 대부분 책상에 앉아 몇 장의 서류를 꼼지락거리면서 내용을 검토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가급적 천천히 했고 업무량이 적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사무실이나 복도를 오갈 때면 걸음을 서둘렀다. 일부러 잘못한 게 아니라면, 그럴 만한 업무도 아니었지만, 실수를 하는 일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잘못된 내용을 수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일도 없었다. 담당자가 제출한 서류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내용을 보완해달라고 하면 오히려 일이 늘어난 것을 기뻐하며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작정이었으나,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제출한 서류에 대해 담당자는 특히 이 점이 잘되었다거나 뭔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거나 오자가 많다거나 내용상 오류가 있다거나 하는 지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담당자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담당자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사무실에서 말을 나누는 유일한 상대가 담당자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서류를 건네주며 나누는 형식적인 인사가 전부일지언정. 그는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치는 건물 관리인에게 인사를 하는 것 이외에 담당자에게 서류를 건네주면서 오늘은 이 정도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을 제외한 사무실 동료들은 모두 너무 바빠서 점심시간이 아니면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잘 정돈된 책상 앞에 앉아 재미있는 영화를 보듯이 모니터를 빤히 들여다보거나 잠을 자듯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우르르 몰려나가 그날의 메뉴에 따라 패를 나누느라 소란을 떨 필요 없이 건물 앞에 죽 늘어서 있는 도시락 트럭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도시락을 사다가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먹었다. 그는 종종 담당자에게 서류를 건네주기 위해 일어섰다가, 일부러 다른 용무가 있는 듯 광장같이 넓은 사무실을 횡단했다. 사무실은 거대한 벌집처럼 칸칸이 나누어져 있었다. 지역과 도시별로 구분되어 있고 모든 자리에는 구역 표시 기호와 좌석번호가 눈에 쉽게 띄도록 붙어 있었으며 출입문 입구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마치 공연장의 좌석안내도처럼 커다랗게.

토끼를 데리고 온 다음 날 그는 담당자에게 서류를 건네주려고 내밀었다가 담당자가 받으려고 하자 얼른 뒤로 감추었다. 담당자는 웃음을 거두고 그를 빤히 보았다. 이런 식의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당황하여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직원 분 중에 혹시 토끼를 키우는 분이 계실까요? 담당자가 되물었다. 토끼 말씀입니까? 누군가 키워본 사람이 있다면, 그가 뒤로 감췄던 서류를 담당자에게 내밀며 말했다,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요. 토끼가 한 마리 생겼거든요. 파견근무를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가 없네요. 담당자가 그에게서 자료를 받아 책상 오른쪽의 서류더미 위에 툭 올려두며 말했다. 토끼는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는 동물이지요. 특별히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이 파견근무 중이에요. 파견근무를 한다는 것이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죠. 그래요? 누가요? 누가 또 그런가요? 그가 서둘러 물었다. 담당자가 대꾸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수그리려는 게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담당자가 고개를 수그리기 전에 뭔가 대답을 듣고 싶었다. 뭐가 그렇다는 거죠? 토끼를 키우는 게 누구냐는 거요, 아니면 파견근무 중인 게 누구냐는 거요? 그는 기뻤다. 담당자가 자기 마음을 헤아려준 것 같았다. 둘 다요. 제가 알고 싶은 게 딱 그거예요. 누가 토끼를 키우는지, 파견 나온 사원이 누구인지 하는 거요. 누구인지는 알 수 없죠. 말했다시피 토끼는 누구나 키우는 동물이고 또 시기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파견근무 중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담당자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는 가마가 오른쪽으로 치우친 담당자의 검은 머리통을 하릴없이 쳐다보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담당자의 말을 듣고서 사무실 동료 중에 토끼를 키우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같은 사무실 동료 중 토끼를 내다 버린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담당자 말대로 모두가 파견근무 중인 거라면 사무실에 있는 혹은 있었던 누구든 토끼를 버릴 수 있었다. 그가 파견근무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가차 없이 토끼를 버릴 것이듯.

 

 

 

*

 

똑똑. 그가 철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쿵쿵 철문을 두드린 후에 계세요? 라고 물었지만 역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문 앞에 주저앉았다. 바닥이 차고 등이 딱딱해서 곧 일어섰다. 아무리 앉아 있어 봐야 문 안에서 어떤 기척을 느낄 수가 없고 상사가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날마다 상사의 집에 갔고 상사의 집 철문을 두드렸으며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뒤돌아 나왔다. 어떤 날은 상사의 집 현관을 발로 펑 찼고 손으로 쿵쿵 두드렸고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문 열라고 괜한 소리를 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코를 철문에 박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죽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상사의 집에서는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인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다행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상사는 그가 도시로 온 직후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무렵이라고 생각되는 시점에 사라져버렸다. 그는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상사의 이름을 대며 그를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그가 누구인지 한참 생각하다가 명단이 빼곡히 적힌 서류를 한참 뒤진 후에야 상사가 무단결근 중이라고 말해주었다. 무단결근이요? 그가 되묻자 담당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같이 근무하던 시절의 상사를 떠올리면, 그렇게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결코 무단결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근태에 있어서 성실했고 업무 시간을 효율적이고 밀도 있게 사용하는 상사였다. 어떤 식으로든 상사가 그에게 사무생활에서 모범이 된 것은 틀림없었다.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을 일러준 사람이 그였다. 정보가 통용되는 방식,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흉이 되는 소식이라면 얼른 퍼뜨리고 다른 사람에게 득이 되는 소식은 혼자서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 사람도 상사였다. 그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지시 받은 서류를 작성하여 건네주면 상사는 항상 그 자리에서 대강 훑어보고 음, 좋긴 하지만 이 부분은 보완해야겠어, 라고 대답하면서 서류를 되돌려주었다. 상사는 모르고 있었지만, 어쩌면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후배들이 붙인 그의 별명은 하지만이었다. 상사에게 서류를 돌려받았다고 해서 당장 수정하는 일에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입사원답게 여기저기서 시키는 급하지만 잡다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처리했고 그러느라 이미 제출한 서류를 수정하는 데에 공을 들일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할 수 없이 나열된 정보의 순서를 바꾸고 서식 간의 여백을 많이 두어 분량을 다소 늘린 형태로 다시 건넸을 때, 상사는 그에게 좀 더디긴 하지만 수정한 후 좋아졌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는 자신에게 파견명령을 내린 상사의 연락처와 소재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인사과에 몇 차례 전화를 걸고 부재중인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메모를 남겼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여러 번 허탕을 치다 만난 인사 담당자는 개인정보이므로 알려줄 수 없다는 이유로 고집을 부렸다. 담당자를 설득해 겨우 알아낸 상사의 주소지는 그의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퇴근 후에 상사의 집에 들러 문을 두드리고 한참 상사의 이름을 불러본 후에 어제와 다름없이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이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사라진 상사에게 내심 섭섭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 우선 토끼에게 사료를 주었다. 사료를 주는 것 이외에 토끼를 위해 해주는 것, 일테면 케이지에서 나오게 하여 맘껏 돌아다니게 한다거나 털 손질을 해준다거나 케이지를 깨끗이 청소해 준다거나 가슴에 안고 쓰다듬어준다거나 하는 일이 결코 없는데도 그는 토끼가 귀찮아졌다. 한꺼번에 되는 대로 사료를 쏟아주어 양껏 먹도록 내버려두었고, 그러다가 사료 주는 것을 잊어버려 며칠씩 배를 곯게도 했다. 사실 그가 토끼를 데려온 것은 순전히 파견근무 기간이어서였다. 만약 이 도시에서 언제까지나 지내야 한다면 그는 결코 버려진 토끼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길어봤자 몇 개월만 토끼를 책임지면 되는 거였다. 영영 돌볼 필요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토끼의 정서와 건강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버려질 거였으니까.

일단 집에 돌아오면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도시에서 그의 삶은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퇴근길에 무단결근 중인 상사의 집에 들러 습관처럼 문을 두드려보고, 집에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며 다행히 괴상한 냄새도 풍겨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오는 게 전부였다. 저녁을 먹은 후 집 근처의 공원으로, 그러니까 토끼를 주워 온 공원으로 간혹 산책을 나가곤 했지만 그것도 어느 날 저녁 보도된 뉴스를 본 후로 그만두었다.

그가 파견근무를 나온 직후 도시에서는 한 사내가 한가로운 휴일 오후를 즐기고 있던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사상자를 낸 사건이 벌어졌다. 조기축구회 이름이 크게 쓰인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내였다. 세 명이 죽었고 아홉 명이 부상을 당했다. 여러 지역의 조기축구회 사람들이 괜한 욕을 먹었다. 잠정적으로 매일 아침 하던 축구 모임을 중단하고 유니폼에 새겨진 글자를 떼어냈으나 이내 이름을 바꿔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할 수 있을 때면 언제든 다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개탄하고 분석하고 대처하기도 전에 또 다른 무차별 살해를 예고하는 동영상 테이프가 방송사에 도착했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졌다. 그도 거의 하루 종일 그것을 보았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무실 내 많은 사원들도 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한 사내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과 입만 내놓은 채 웃통을 벗고 칼을 들고 찍은 동영상이었다. 언성을 높인 사내가 숨을 쉬듯 자주 휘둘러대는 칼은 날이 보이지 않도록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음성 분석을 통해 삼사십 대의 독신 사내일 거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사내에 대해 알려진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정보뿐이었다. 한곳에 고정해놓고 찍은 동영상은 흔들림 없이 잘 보였는데, 간혹 웃통을 벗고 식칼을 휘두르던 그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서면 텅 빈 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그 방을 보며 왠지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구의 생김새와 색깔, 배치 방식 그리고 특징 없이 희기만